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능력을 앞서가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하다. 이가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이름 없는 생명체. 해당 작품의 함의는 다음과 같다.
기술에 대한 두려움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세계 정복에 대한 야욕에 찬 이들은 대부분 과학자이다.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대한 경험으로 과학이 문명을 파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 일본 창작가들의 무의식적 공포의 반영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테크놀로지는 삶을 편하게 만드는 물리적 차원 뿐 아니라 다층적 측면에서 정신척 차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에 대한 분석을 진행한 대표적 학자가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은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인간이 세상을 자삭, 인식하는 활동에 영향을 줌에 따라 장기적으로 인간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체의 기술이 변화하면, 매체가 지각과정을 매개하기에 지각의 방식과 종류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사진술은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사진술을 통해 인류는 같은 이미지를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술의 등장에 따라 기존 예술 작품의 '아우라'는 소멸하였다. 아우라란 각각의 예술 작품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를 의미한다. 아우라는 이 세상에 하나만 존재한다는 시간적, 공간적 맥락에 따라 형성되는 것인데, 쉽게 복제 가능한 사진술의 발전에 따라 '유일무이성'이 훼손되어 흔한 예술 작품으로 인식이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중세시대에서 교회 안의 예술 작품은 신을 만난 듯한 인식을 전해주었다면, 대량 복제술, 즉 사진술의 발명 이후에는 의례적 가치가 상실되고 전시의 가치만이 남게 된다.
영화와 미술관 역시 예시가 될 수 있다. 미술관에서는 정적으로 예술 작품을 관조적으로 몰두하는 방식의 감상이 이뤄진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해당 방식의 감상이 불가능하다. 스크린의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에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이유로 영화는 '충격'이며 '통제 불가능한 대상'이다. 벤야민은 영화 경험을 컨베이어 벨트의 단순 반복 노동 혹은 군중으로 가득찬 도시 거리를 걷는 활동에 비유한다.
또한 카메라는 인간의 시각 영역을 확대시킨다. 확대 기능, 슬로우 모션 기능 등은 인간의 시각적, 광학적 무의식을 넓혀주어 기존 인간의 눈으로는 지각 불가능한 영역을 의식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맥루한은 미디어가 인간 신체의 연장이라 주장한다. 미디어가 인간과 외부세계 간의 관계를 매개하고, 신체 감각 기관의 능력을 확장시켜준다는 점에서다. 예컨대 바퀴는 인간 발의 연장, 전화는 귀의 연장, 카메라는 눈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지각을 매개하기에 미디어의 기술적 변화는 인간의 세계 지각 및 사유 방식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점에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의 그릇이 아니라 메시지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맥루한은 미디어를 정세도와 참여도에 따라 뜨거운 미디어와 차가운 미디어로 나눈다.
정세도 | 참여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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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미디어 | 높다 | 낮다 |
차가운 미디어 | 낮다 |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