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적 계급에 대한 정의에는 다음 두가지가 있다.
부르디외는 위 두가지를 제외하고 실천적 부분에 집중한다. 개인들이 주체로서 활동하며 계급 사이의 장벽을 강화하는, 즉 계급이 주체에 의해 재생산되는 부분을 보는 것이다. 이때 재생산이란 부, 지위, 권력, 교육, 문화 등이 있는데, 부르디외의 실천적 재생산의 관점은 교육과 문화에 존재한다.
문화자본(+ 학력자본)은 세가지 양태로 나타난다.
이같은 문화, 학력자본은 차별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계급을 구분짓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논의의 초점은 세가지로 나뉜다.
집단적 성향, 습성을 의미한다. 취향을 만들어내는 매커니즘이다. 무의식적으로 체화된 기제이다. 에토스, 육체적 엑시스로 구성된다. 에토스는 일상의 행위를 결정하는 내면화한 형식으로, 감정적 지향성을 의미한다. 육체적 엑시스는 육체적 만족감으로, 내가 그걸 먹고 정말로 좋아야 한다. 비교적 외적, 내적 구분이라 볼 수 있겠다. 아비투스는 구조화하는 구조이자 구조화된 구조라고 이야기 한다. 이때 구조화된 구조는 내 선택지가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움직이는 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너무 구조적이지도, 너무 우연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가난해도 높은 취향을 가질 수는 있으니까. 기회나 가능성이 낮아서 그렇지. 아비투스는 계급의 집단적 성향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수치만 보고 결론을 내리면 실증주의적 오류에 빠진다. 측정조건 자체도 의심해야지. 문화자본의 구별짓기를 파야 한다. 조사는 중요하지만, 실증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마르크스의 계급과 베버의 합법화 과정,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을 종합하려는 시도다.
다섯가지의 자본이 존재한다.
사회공간을 몇개의 구분되는 시장체계로 나눈 것이다. 즉, 장은 독자적 논리를 가진 사회적 영역들이다. 그러나 각각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들이 작동할 수도 있다. 예컨대, 경제적 장에서 문화적 자본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나 문화적 장에서는 경제적 자본도 중요하다. 반면 정치의 장에서는 모든 자본이 중요하다.
하버마스의 화용론을 너무 이상적이라고 비판한다. 상징자본이 존재하는 한, 이상적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명예, 지위 등으로 표상되는 상징자본은 알게모르게 폭력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적 교환은 권력작용을 내포한다고 이야기한다. 언어적 상황은 결코 평등치 않고 이미 지위적인 능력에 기반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상징자본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의사소통 내에서는 무조건적으로 권력이 존재하고, 이는 폭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언어능력은 단순 기술적 능력이 아닌 지위적 능력이다.
상징자본에 의한 상징폭력은 단순 대화 뿐 아니라 일상 모든 곳에 존재한다. 일상도처에 계급적 지배가 존재하며, 이는 아비투스를 통해 재생산된다고 이야기한다.